스페셜톡
하얗게 피어난 얼음 꽃 하나.. 야생화, 박효신
2023.01.13

첫 연재니만큼 어떤 곡으로 선택할 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원래 계획은 1980년대가 낳은 마스터피스인 유럽(Europe)의 ‘The Final Countdown’의 흥미로운 배경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무런 연유도 없이 이 곡이 떠올랐다. 박효신의 정규 7집 `I Am A Dreamer` 의 수록곡 ‘야생화’다.


2016년 발매된 박효신의 정규7집 I am A Dreamer 앨범 이미지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워낙 좋은 곡을 많이 발표했고, 앨범 단위로도 수작이 여럿인 까닭에 취향에 따라 박효신 최고작 선택은 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경우, 곡으로는 몰라도 앨범으로는 확고하여 부동한 영순위가 존재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박효신의 정규 7집 I Am A Dreamer다.

기실 박효신이라는 보컬리스트를 처음부터 애정했던 건 아니다. 나는 그의 이른바 소몰이 창법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았다. 한데 따져보면 그것은 박효신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닌 소몰이라는 트렌드가 과하게 가요계를 뒤덮었기 때문인 탓이 컸다. 어쨌거나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적어도 내 취향과 소몰이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 당신은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평론가인만큼 객관과 공정을 실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적시하면 대중문화를 향유하는데 있어 객관이란 없다. 나와 당신의 음악 듣기의 역사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포괄하지 않는 이상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스포티파이의 발표에 따르면 하루에 발매되는 곡만 평균 4만에서 5만 곡이라고 한다. 여기에 과거의 음악까지 합치면,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 챙겨 들을 수 없다. 서로 다른 역사 위에서 서로 다른 취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차트를 객관적 지표로 들이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차트 역시 수많은 사람의 주관을 수치화한 뒤 서열을 매긴 결과물이다. 주관의 덩어리가 커진다고 해서 그것이 객관이 될 수는 없다. 나는 허망한 객관이 아닌 나의 주관을 글 읽는 사람에게 명료하게 설득할 줄 아는 평론가이고 싶다. 대개의 경우 실패한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야생화’ 키 체인지 부분이 나오는 피아노 악보

다시, 박효신의 ‘야생화’다. 나는 이 곡의 매력이, 음악을 전공하는 분들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코드 진행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코드 전위의 매력을 이 곡만큼 잘 보여주는 예시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 후렴구에서의 키 체인지 역시 끝내준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솟구치는 부분.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진성으로. 더 이상 소몰이는 하지 않고.

또 다른 수록곡 ‘숨’ 역시 마찬가지다. 기타로도 표현 가능하긴 하겠지만 이렇게 코드가 복잡한 곡에는 역시 피아노가 제격이다. 음반에서 그의 파트너로 코드 보이싱에 능한 정재일이 함께 한 음악적인 바탕일 것이다. 그나저나 ‘숨’과 ‘야생화’의 유튜브 리액션 영상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 친구들은 멋지게 피아노 치는 저 사람이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작곡가라는 걸 알고는 있을지 궁금하다.


‘야생화’를 연주하는 정재일(왼쪽)과 박효신(오른쪽)

마지막으로 추억 하나 소개하려 한다. 2017년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새벽 1시쯤이었을 게다. 친구들과 술 한잔한 뒤 귀가하던 와중 ‘야생화’와 ‘숨’을 골라 플레이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걷고 있는데 거리 한복판에서 말 그대로 펑펑 울었다. 1년 정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간절하게 밀려와서였다. 그의 외롭고, 지난했던 말년의 생애가 떠올라서였다. 그것은, 이렇게 울다가 내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지독한 울음이었다. 깊고, 뼈에 사무치는 울음이었다.

그렇게 울음을 구토하듯 뱉어낸 뒤 내 안의 뭔가가 정화되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나는 이게 예술이 우리에게 아주 가끔씩 선물하는 구원의 순간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체험을 하고 나면 그 음악을 사랑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 [I Am A Dreamer]와 ‘야생화’는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인생반, 인생곡이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비사이드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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