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톡
Metallica ‘Enter Sandman’ (1991)
2023.11.21

가끔씩 “음악이란 대체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내가 좋은 팁 하나 알려줄까. 이런 거대한 형이상학적 질문 앞에선 고민해봤자 무소용이다. 만약 어떻게든 답을 주고 싶다면 도리어 거꾸로 가야 한다. 뭐랄까. 매우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서 상대를 당황시키는 전법인 셈이다.

내 대답은 이렇다. “음악은 메탈리카(Metallica)죠.” 뭐, 나도 안다.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어이없어할 거라는 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한데 진짜 그렇게 확신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어렸고, 세상 몰랐다. 헤비메탈만이 내가 사는 세상의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다. 적시하면, 고등학생 때였다. 메탈리카는 지구의 왕, 아니 우주의 황제였다. 그땐 그랬다. 메탈리카가 곧 음악이요, 음악이 곧 메탈리카였다. 정말이지 철 모르던 시절이었다. 너른 양해를 부탁한다.

그럼에도, 메탈리카의 위대함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의 명반을 하나만 꼽는 게 언제나 난제인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3집 『Master of Puppets』(1986)을 선택하는 와중에 누군가는 4집 『…And Justice For All』(1988)이 최고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이 둘이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는 틈을 타서 2집 『Ride The Lightning』(1984)을 하늘 높이 치켜드는 팬도 있을 게 분명하다. 나는 좀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메탈리카의 최고 걸작은 바로 이 작품이다. 속칭 뱀 앨범 또는 블랙 앨범이라고 불리는 『Metallica』(1991)다.


메탈리카의 앨범 (왼쪽부터 Master of Puppets, …And Justice For All, Ride The Lightning, Metallica) ‘

이유는 이렇다. 5집 이전까지 메탈리카의 앨범은 레코딩 퀄리티가 ‘대단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그 중에서도 4집은 ‘One’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스래시 메탈 마스터피스를 수록하고 있음에도 베이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5집은 거의 완벽하다. 밥 록(Bob Rock)의 프로듀스 아래 각 악기 소리는 명료하고, 이 악기 소리들이 하나로 합쳐져 청각을 정확하게 타격하는데 그 와중에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다. 물론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메탈리카의 가장 위대한 앤섬(anthme)은 3집 타이틀 ‘Master of Puppets’일 것이다. 이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앨범 단위’로 꼽자면 나에게는 5집이 넘버원이다.


전설적인 락 프로듀서 밥 록(Bob Rock)‘

그 중에서도 이 곡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도 수많은 카피 밴드의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을 그 곡, ‘Enter Sandman’이다. 나도 그랬고, 당신도 그랬을 것이다. 한때 록 기타리스트를 꿈꾸면서 이 곡을 카피했던 추억, 있었을 것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 곡을 틀면 거의 자동적으로 다음 같은 문자를 받을 수 있다. “스쿨 밴드 열심히 했던 시절 생각나네요.” “직장인 밴드에서 이 곡 카피했었는데.” 등등.

이 곡에 영감을 준 건 시애틀 출신 밴드 사운드가든의 음반 『Louder Than Love』(1989)였다고 한다. 사운드가든은 시애틀 그런지로 분류되는 밴드들 중 가장 ‘메탈적’인 음악을 추구한 밴드였다. 그들의 음악을 통해 메탈리카는 아마도 기왕의 스래시 메탈이 아닌 좀 더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메탈을 시도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 결과 나온 곡이 ‘Enter Sandman’이었던 것이다.


사운드가든 멤버들과 앨범 ‘Louder Than Love’

드러머 라스 울리히(Lars Ulrich)는 이렇게 밝혔던 바 있다. “이 곡은 가사를 쓰기도 전부터 5집 앨범의 키 역할을 해줬어요.” BPM은 132에 곡이 시작되자마자 기타 아르페지오가 울려 퍼진다. 이후 드럼의 톰톰과 베이스가 합세해 곡의 분위기를 서서히 끌어올린다. 또 다른 핵심은 E 마이너 코드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귓전을 울리는 와와 페달 연주일 것이다. 여기에 메인 리프는 E/B♭ 3온음을 변형한 코드를 사용하면서 마치 전면에서 탱크가 서서히 돌진해오는 듯한 인상을 길어낸다. 이후 코러스에서 F#으로 변조가 된 후 다양한 음계와 와와 페달을 이용한 커크 해밋의 명품 솔로가 이어진다.


‘Enter Sandman’ 곡의 기타와 드럼의 인트로 부분과 20마디 이후 들어오는 베이스 라인


‘Enter Sandman’ 곡의 Em코드에서 F#m코드로 분위기 변화하는 구간

가사 내용은 좀 살벌하다. 멤버들에 따르면 “악몽과 그에 따라오는 모든 것”에 대한 곡이라고 한다. ‘샌드맨’은 서양에서 아이를 잠들게 하는 존재를 일컫는다. 이를 기반으로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는 아이들을 조종하려는 어른들에 대한 우화를 쓰고 싶었다고 밝혔던 바 있다.

처음 이 곡을 접했을 때가 떠오른다. 정말 깜짝 놀랐다. 이보다 속이 꽉 차 있는 드럼 사운드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비단 드럼 연주만은 아니다. 이 앨범의 사운드적 성취는 전 파트에 걸쳐서 빛을 발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표현을 빌리자면 ‘차돌처럼 단단한 소리’다. 따라서 헤비메탈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사운드를 일궈낸 곡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비사이드 진행자)

관련악보
앨범커버
Enter Sandman
Metallica
Metallica(5집)
B
P
M
S
O
C
MR
앨범커버
One
Metallica
...And Justice For All
B
P
M
S
O
C
MR
앨범커버
Master of Puppets
Metallica
Master of Puppets
B
P
M
S
O
C
MR
최신 스페셜톡
Ozzy Osbourne ‘Crazy Train’(1980) - 헤비메탈의 설계자, 신화가 되다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이 세상을 떠났다. 어둠의 왕자가 어둠으로 돌아갔다. 내한 공연의 추억이 떠오른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온통 좋은 순간뿐이다. 마치 신도에게 세례를 내리는 듯한 그의 포즈
존 메이어 ‘Gravity’(2006) – 블루스에 담긴 자제의 미학
젊은 거장이라고 불릴 만한 뮤지션을 꼽아본다. 여럿 있지만 존 메이어(John Mayer)가 빠질 수 없다. 1977년생. 나와 동갑. 올해 나이 47세. 어쩌면 누군가는 너무 이른 나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
My Chemical Romance ‘Welcome to the Black Parade’(2006) – 청춘에게 바치는 가장 드라마틱한 록 찬가
인터뷰를 보면 “인간 정신의 승리”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다소 거창하지 않나 싶겠지만 음악을 들어보면 그럴 자격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한 펑크(Punk)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측면에서 이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