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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개화(Flowering)’(2020) - 그 찬란한 ‘개화’의 순간
2025.11.17

대략 5년 전 루시의 라이브를 1열 직관했다. ‘스튜디오 음악당’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정확하게 복기할 수 있다고 말하면 거짓이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소문대로 그들은 뛰어난 라이브 밴드였다. 감탄하면서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튜브에서 이 라이브를 여전히 볼 수 있다. 꼭 체크해보기를 바란다.



루시의 음악적인 특징은 멤버 구성에서 이미 드러난다. 여러분도 다 알고 있다시피 루시 음악의 핵심 악기는 기타가 아니다. 베이스나 드럼도 아니다. 그렇다. 바이올린이다.

오해해서는 안 된다. 기타, 베이스, 드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여러 악기의 ‘합’이 아귀가 착착 맞아 돌아가는 와중에 바이올린 소리가 두드러지는 구성을 취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 곡 ‘개화(Flowering)’가 대표적이다. 이 곡을 고른 이유는 명확하다. 루시의 히트곡 중에서도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사이트를 봐도 좋아요 개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과연, 루시의 음악답게 바이올린으로 문을 연다. 잔잔한 듯 활력 넘치는 연주다. 한데 글을 읽는 여러분은 ‘잔잔’과 ‘활력’은 모순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 곡은 시작함과 동시에 이미 이후의 전개를 자연스럽게 품고 있다. 즉, 도입부만 들어봐도 곡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머리 속에 대강의 지도가 그려진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노래들이 대개 이런 식이다. 인간은 친숙한 와중에 아주 약간의 낯섦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개화(Flowering)’가 정확하게 그런 곡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 도입부는 E/G#-A-C#m7-B로 이뤄진다. 이후 루시는 프리 코러스에서 A-E/C#-C#m7-B로 변화를 시도해 긴장감과 나중의 전개를 위한 동력을 이끌어내고, 후렴구에서는 도입부 코드 진행을 ‘더 큰 스케일’로 반복한다. 누가 들어도 개화라는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구성이다. 또, 슬래시 코드와 G#m7의 적극적인 사용은 곡에 유려하면서도 풍성하고, 더 나아가 몽환적인 서정미를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화(Flowering)’은 듣기엔 편하지만 단순한 팝 록이 아니다. 순환 코드의 자연스러운 진행과 점진적인 변화, 이를 통한 정서적 상승으로 곡의 메시지인 ‘희망’을 인상적으로 구현한 곡이다. 중심 키인 E 메이저를 바탕으로 루시는 익숙한 구성 속에서 새롭지만 낯설지는 않은 감각을 일깨운다. 이것이 바로 ‘개화(Flowering)’가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이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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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Flow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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