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 하나. 나는 신해철의 오랜 팬이다. 그의 곡과 앨범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많이 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던 내가 2005년 신해철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2014년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스페셜 DJ를 맡아 방송도 같이 했다.
당시 그는 내가 그의 팬임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내가 코너에 출연해 “’그대에게’는 무한궤도 오리지널이 소중하지만 듣다 보면 2006년 넥스트(N.EX.T)로 재녹음해서 발매한 버전이 음악적으로는 더 단단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의견을 밝혔을 때 그가 했던 대답을 잊지 못한다. “역시 배순탁.” 그럼에도, 이 글은 무한궤도 원곡을 기반으로 썼음을 밝힌다. 음악에서 노스탤지어보다 강력한 건 없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같은 곡이라면 더욱 그렇다.
20살 때 만든 자작곡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문방구에서 산 멜로디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어쩌면 내 옆집 사는 외국인 남편도 알고 있을 그 위대한 전주가 멜로디언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천성이 극I인지라 물어보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미디(MIDI)의 활용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기실 1980년대까지 한국 대중음악은 서양의 그것에 비해 기술적으로 모자란 점이 많았다. 특히 최상의 음질을 구현할 수 있는 환경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했다.
이 간극을 그래도 유의미하게 메워준 뮤지션으로 우리는 정확히 2명을 꼽을 수 있다. 신해철과 윤상이다. 두 음악가가 나중에 함께 『노땐스』(1996)를 발표하는 가장 큰 바탕이기도 하다. 신해철은 이 곡에서 당시로서는 첨단 장비였던 워크스테이션 건반을 활용해 여러 악기의 층(Layer)을 쌓아 올렸다. 그것은 한국 가요계에 본격적인 ''미디 작곡 시대''를 예고한 선구자적 행보였다.
‘그대에게’의 구조와 전개는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웅장하게, 그러나 멜로디는 잃지 않으면서.” 곡은 느리고 장엄한 금관악기 스타일의 인트로(A 파트)에서 갑자기 경쾌한 8비트 리듬의 절정(B 파트)으로 전환되고, 중독성 강한 후렴구(C 파트)로 이어진다.
리듬은 복잡하지 않다. 전형적인 4/4박자 록 비트 기반이다. 그러나 베이스 라인의 역동적인 연주가 상행하는 진행과 맞물리면서 곡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대학가요제 특유의 젊은 에너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키는 B Major. 따라서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최적의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인 선율은 이에 맞게 전혀 복잡하지 않고,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라인을 유려하게 흐른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다름 아닌 이 곡의 러닝 타임이다. 과거 나와 했던 인터뷰에서 마음에 드는 곡을 1개만 꼽아달라고 했을 때 신해철은 이 곡을 선택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굳이 말하자면 ‘그대에게’죠. 그 곡 안에 제가 추구하는 모든 게 다 들어있으니까요. 드라마틱한 도입부, 절정에서의 선율, 장중한 마무리. 당시 제가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를 하나에 녹여낸 곡이에요. 그것도 4분이라는 적당한 곡 길이에 말이죠.”
과연, 그의 언급처럼 신해철은 이 곡에서 어디까지나 대중음악이라는 점을 잊지 않되 그가 사랑한 ‘프로그레시브’ 미학을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현대적인 도구로 벼려내 미래를 위한 지지대로 삼았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장담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그대에게’는 그 장소가 어디든 앞으로도 영원히 울려 퍼질 것이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