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오면 어김없이 들어오는 신청 곡이 몇 있다. 프린스의 ‘Purple Rain’이 그중 하나다. 놀라지 마시라. 나는 프린스의 공연을 무려 3번이나 봤다. 때는 2013년.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프린스가 3일 연속으로 라이브를 했고, 현장에 내가 있었다. 프린스는 굉장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날마다 세트리스트를 바꿔가면서 펑크(funk), 알앤비, 솔, 록, 사이키델릭, 팝, 가스펠 등 수많은 장르를 최고 수준으로 들려줬다.
세상은 이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사운드라고 불렀다. 미니애폴리스 사운드는 기실 별 게 아니다. 프린스의 음악을 뜻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다. 이유는 간단하다. 워낙 많은 장르가 섞인 탓에 정의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프린스의 고향을 장르 명에 갖다 붙인 것이다.
비 오는 날이면 가끔씩 챙겨 듣는 프린스의 곡은 무진장이다. 한두 곡만 고르기는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딱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이 곡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닌 ‘Purple Rain’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동명 영화 『Purple Rain』의 대미를 장식하는 트랙으로 사랑받은 이 곡은 미니애폴리스의 클럽 퍼스트 애비뉴(First Avenue)에서 가졌던 영화 속 공연 실황을 스튜디오에서 정교하게 다듬어 완성한 것이다. 한데 이것이 바로 8분이 넘는 이 대곡이 라디오와 길거리에서 끊임없이 흐를 수 있었던 바탕이었다. 압도적인 라이브의 현장감으로 듣는 이를 매혹한 것이다.
기본 조성은 Bb Major. 템포는 57BPM. 전체적으로 리듬이 느릿하고 묵직하게 흐른다. 곡이 진행될수록 가스펠 피아노와 스트링 연주가 겹겹이 쌓이는데, 압권은 역시 후반부에 위치한다. 장담할 수 있다. 디스토션 걸린 프린스의 일렉트릭 기타 솔로가 5분 동안 이어지는 이 파트가 없었다면 이 곡은 클래식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코드 진행은 복잡하지 않다. 단순한 팝 발라드 구조에 가까운데 프린스의 음악이 대개 이렇다. 재미있게 비유하자면 “우기는 음악”이라고 할까. 동일한 구조를 반복해 쌓아가는 와중에 변주를 주면서 끝끝내 듣는 이를 감동하게 한다. 특히 차근차근 고조되는 절정부의 폭발력과 마지막에 모든 악기가 걷히고 피아노와 스트링만 남는 하향 곡선의 아련함이 곡의 핵심이다. 결국 ‘Purple Rain’이 지닌 음악적 매력은 화려한 테크닉이나 복잡한 구성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질감과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세상의 종말 앞에서도 초연하고자 하는 가사의 섬세한 스토리가 완벽하게 맞물린 데서 나왔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린스의 에피소드로 글을 마친다. 이를 위해서는 수퍼볼(Super Bowl) 하프타임 쇼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미국의 국민 스포츠는 미식축구다. 미식축구 시장 규모는 유럽 축구 4대 리그를 합친 것보다 크다. 따라서 가장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는 미식축구 결승전인 수퍼볼이 된다. 음악계에서도 수퍼볼은 매년 화제다. 전 후반 중간의 하프타임 쇼 때문이다.
원래 하프타임 쇼의 성격은 지금과 달랐다. 프로 아닌 아마추어의 영역이었고 대학 마칭 밴드나 군악대가 출연했다. 변화의 시작은 1990년대부터였다. 동 시간대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팝 스타를 섭외한 것이다. 그 출발을 알렸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1993년 쇼는 지금도 전설로 회자된다. 이에 견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 2007년의 프린스뿐이다. 오죽하면 비평가 하닙 압두라킵(Hanif Abdurraqib)이 프린스의 하프 타임 쇼에 대해 다음 같은 말을 남겼겠나. “2007년 수퍼볼에서 어떤 팀이 어떤 팀과 붙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억도 안 난다. 오직 프린스의 공연만이 앞으로도 이야기될 것이다.”
하프타임 쇼 당일 비가 오자 프로듀서가 물었다고 한다. “비 오는데 괜찮겠어요?” 프린스의 대답이 걸작이다. “더 내리게 할 수 있어요?" (Can you make it rain harder?)_편집자주 그리고 프린스는 역사에 길이 남을 ‘Purple Rain’ 라이브를 선보였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세계 최고 기타리스트는?”이라는 질문에 에릭 클랩턴(Eric Clapton)이 “프린스에게 물어봐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도시 전설이다. 에릭 클랩턴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물론 프린스는 의심의 여지 없는 뛰어난 기타리스트다. 다름 아닌 위에 언급한 하프타임 쇼 영상이 증명한다. 유튜브에 ‘Prince Super Bowl’이라고 치면 볼 수 있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